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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중세철학에서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

by 철학에대하여 2024. 3. 13.

중세철학에서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

중세철학은 대략 9~15세기에 걸쳐 발전한 철학을 말하며, 아퀴나스가 대표하는 스콜라주의와 동일하다. 역사계에서는 제국의 쇠퇴를 고대의 종말로 보고, 콘스탄티노플의 정복과 종교개혁의 시작을 근대의 시작으로 여기는데, 이 시기를 중세라고 합니다. 중세철학의 기초란 초기 기독교의 건국 이후 이성과 신앙, 철학의 논쟁으로 인해 교부시대와 스콜라시대를 포괄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교부철학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체계화와 확립에 기여한 초기 학자들을 교부(Church Fathers)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였고, 기독교의 기초를 닦았기 때문에 교회의 교부라고도 불립니다. 교부들의 철학은 기독교에 대한 신앙과 도덕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초기 기독교를 육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교부들은 기독교 성직자들을 가리킵니다. 스콜라철학은 학교를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사제들에게 가르친 과학을 스콜라주의라고 불렀습니다. 학술 프로그램은 신학, 철학, 교양 과목으로 구분됩니다. 특히 여기서 교양과목은 로마제국 후기 철학의 예비학문으로 여겨졌던 학문의 명칭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학문은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에게 가치 있는 활동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교양학술이라고 불립니다. 정치사상가 키케로는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연구라는 뜻으로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습니다.

 

중세철학에서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
중세철학에서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

중세철학의 보편논쟁

중세 철학의 일반적인 논쟁은 개별적인 것이 존재하는지, 개별적인 것을 초월하고 포함하는 보편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보편주의자는 개인이 아닌 개념을 가리켰습니다. 명목주의는 보편자는 인간의 사고 속에만 존재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개별 사물의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실재론은 보편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스콜라철학의 중요한 개념적, 형이상학적 문제는 경험적 사물과 보편적 개념 사이의 실존적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당시 보편성 개념이 보편성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스콜라주의 전반에 걸쳐 이와 관련된 일관된 논쟁을 보편성 논쟁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중세 후기에 뜨거워졌고 중세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명목주의를 억제함으로써 공동의 논쟁이 해결되지만, 이것이 논쟁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 논란은 다시 불거졌습니다. 궁극적으로 일반적인 논쟁은 이론적 교리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이 보편적 논쟁은 하나님의 절대성, 교회의 영원성, 이상인간인 아담의 실체를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세철학의 존재론적 신의 증명

초기 스콜라주의는 안셀무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셀무스는 약 400통의 편지를 썼고 그의 생각을 기도와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철학적, 신학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즉, 그는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책들을 남겼습니다. 안셀무스는 12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이자 스콜라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논쟁적인 신학을 발전시켰고 인간의 속죄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안셀무스는 아담이 죄를 짓지 않는 능력으로서 자유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의 후손으로서 인간에게는 자발적인 자유와 선택적 자유의 가능성이 있었고, 이러한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여 죄의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안셀무스의 신에 대한 증명은 스콜라주의의 전성기와 현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궁극적으로 안셀무스는 기독교 교리의 내용이 권위의 도움 없이 순전히 이성에 기초하여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안셀무스에게 신은 자신보다 더 위대하고 완벽한 놀라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보다 더 완전하고 상상할 수 없는 신이 존재해야 합니다.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신은 상상할 수 있는 비존재보다 더 완전하고, 우연히 존재하는 신보다 훨씬 더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하나님은 실재하실 수 없습니다.

 

스콜라철학과 근대의 경계선

쿠사누스는 후기 스콜라주의의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그는 중세의 마지막 철학자이자 최초의 현대 자연 탐험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스콜라주의의 족쇄를 깨고 현대 철학의 길을 닦은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쿠사누스의 철학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와 근대 초기 철학사에 인간 중심의 모델을 제공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유산은 그가 태어난 땅에 있는 요양원의 재정을 여전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몇몇 동시대 사람들처럼 근대성을 예시했습니다. 반면에 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본주의 운동의 성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종교개혁은 반인본주의 운동이었습니다.